루소와 노자 긴 생각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은 디종 아카데미가 내건 '학문과 예술은 풍속의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논문공모 당선작이다. 루소는 여기서 인간의 근원적 자연상태를 가정하고 소유와 권력에 근거한 공동체 상태를 우려한다. 역설적으로 학문과 예술은 기여는 커녕 인간 본연의 자연상태를 파괴했다고 비판한다. 후일 디드로와 다툰 그는 고독한 은자의 삶을 선택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루소의 관점이 별로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그가 말하는 파편화된 인간 상태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수렵채집 시대를 떠올려도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았다. 전제를 이해못하니 그의 해결방향인 일반의지와 사회계약이 이해될리 만무하다.

혹자는 홉스를 순자의 성악설, 루소를 맹자의 성선설에 비유했는데, 나는 루소의 자연상태에서 성선설을 찾기 어려웠다. 단지 무한욕망이 아닌 한계욕망 정도만 짐작할수 있었다. 또 혹자는 민중적 계몽주의라는 측면에서 묵가에 비유하는데, 전체주의적 측면에서 상통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묵자는 철저하게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에서 루소의 자연상태와는 거리가 있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개인이 집단에 소속된 '어쩔수 없음'이 강하고, 싫으면 언제는 집단을 빠져나옴으로서 계약을 깰수 있다. 

이렇듯 알쏭말쏭한 상태로 있다가 방금 루소에 대한 돈오(갑자스런 깨달음)가 일어났다. 그와 유사한 동양사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노자였다. 나는 노자의 '소국과민'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노자와 루소의 해결책이 소규모 집단 직접민주제라고 느꼈고, 그 둘의 전제인 자연상태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모두 인간의 자연상태를 한계욕망으로 보고, 수렵채집보다는 고립되어 정주하는 인간을 염두한다. 

알려진대로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중국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늘 신에게 의지하던 유럽인들에게 신 없이도 공동체의 구성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17세기 라이프니치는 <주역>에 심취했고, 볼프는 맹자의 <대학>에, 칸트는 자의의 <중용>에 영향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불교에 심취했고, 헤겔 또한 이런 흐름을 피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루소는? 나는 감히 그가 <노자>에 심취했던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의 재치와 고독은 때론 장자와도 유사하다. 이렇듯 동양의 노장사상이 루소에 이르러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면 너무 발칙하고 터무니없을까? 그것이 맞건 틀리건 마음만은 후련하다. ㅋ 방향을 찾았으니 이제 점수(서서히 수행함)를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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