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실천 전시를 보고 디자인 생각

일상의 실천 전시 <운동의 방식>
탈영역우정국, 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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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동물은 뇌가 있다. 뇌는 미래를 예측해 위험을 피하려 한다. 위험했던 경험은 반드시 기억해 두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억이 짧다.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눈앞의 자극에 충실할 뿐이다. 반면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을 모두 알기에 기억의 길이가 길다. 오래전에 겪었던 미묘한 감정까지 기억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인간의 몸은 비록 현재에 종속되어 있지만 장기기억을 가진 정신은 과거와 미래를 초월적으로 인식한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해석하여 현재적 상황을 인식하고 기억을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운동'이라 총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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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이 '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를 열었다. 일상의 실천은 종종 환경 혹은 노동자 단체에 디자인을 지원한다. 굵직한 사회문제가 생기면 거침없이 발언한다. 사회참여형 '디자인 운동권'이라 말할 수 있겠다. 다양성이 척박한 한국 디자인 사회에 이런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그래서 미술담당 선배를 모시고 전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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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말장난이나 개념놀이는 없다. 작가만큼이나 작품들도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작품들은 미술'관' 속에서 죽어 있지 않고 살아서 꿈틀거렸다. 눈에 익숙한 작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한곳에 모이니 전혀 새롭다. 탈북자, 세월호, 강정, 국정원... 작품들 하나하나가 사회 문제를 압축한 터라 한국의 근대를 하나의 시선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작은 규모의 전시장이지만 작품의 의도와 의지만큼은 크고 장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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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졌다. 1층이 '갑'이면 2층은 '을'이다. 1층에 큰 기운이 서려 있다면 2층에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고된 삶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작품들을 보면서 그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작금의 디자인 현실은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가 버티기 어렵다. 그럼에도 용케 잘 버티고 있다. 선배가 질문했다. "의도가 안맞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어떻게 대응하나요?"라는 질문에 "그냥 '일이라 생각하자'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두개의 현실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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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현실의 낙차가 이들이 운동하도록 이끄는 동력이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만큼 이들의 목소리와 기상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현실의 비루함을 알기에 비로소 이상을 꿈꾸게 되는... 어쩌면 디자이너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이들은 '디자인+운동'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고 사회를 재조직하려 한다. 이것이 이들의 운동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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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사회문제가 산적한) 우리나라였기에 이런 전시가 가능했을거 같아요. 캐나다였으면 어쩔뻔 했어요" 그의 대답이 가관이다. "환경문제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겠죠" 헐... 어딜 데려다놔도 못말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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