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힘, 소유, 종속 긴 생각

나는 <역사는 디자인된다>에서 인간은 3가지에 갇혀 있다는 다소 비관적 주장을 했다. "첫번째는 우주라는 공간에 갇혀 있고, 두번째는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마지막으로 신체라는 시공간적 한계에 갇혀 있다." 이 주장을 한 이유는 이런 상황을 알면 초월적 입장에서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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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내가 너무 '소유'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소유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면서 그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도 (작은)소유라는 절묘한 상황은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그러나 이 접근은 전형적인 절제를 강조하는 종교적 기법으로 언젠나 성공적으로 관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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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도 소승이 경계하는 '탐(탐욕), 진(진애), 치(우치)' 또한 공(空)하다며 긍정한다. 그럼으로서 탐진치로 중생을 구할 길을 연다. 공적인 탐진치로 사적인 탐진치를 해소하는 기법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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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유'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나의 주장을 '갇혀 있으므로'라는 부정적 접근이 아닌 '소유 하므로'라는 긍적적 접근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은 3가지를 소유한다. 첫째는 우주라는 공간을 소유하고, 둘째는 현재라는 시간을 소유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체라는 시공간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아끼고 책임질 줄 알아야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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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관점의 차이가 꼭 결론의 차이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에게는 언제나 타협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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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소유'를 긍정하는 글을 하나 올렸다. 그런데 본래 취지는 그게 아니었다. 갇힘에서 소유의 책임으로 그리고 다음 단계가 하나 더 있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를 널고 분주하게 출근 준비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만 남은 채 내용은 망각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퇴근길에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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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를 긍정한 본래 취지는 과연 인간이 소유 없이 존재가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롬 같은 분은 '소유보다 존재'를 강조하시지만, 나는 둘은 불가분의 관계요, 인간은 소유할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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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간이 소유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종속된다. 이때 두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신에 종속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소유가 넉넉한 인간에게 종속되는 길이다. 전자는 신성하지만 불편하고, 후자는 천박하지만 편안하다. 이게 인간의 실존이 아닐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 프롬은 전자를 옹호한다. 하지만 난 이미 신체를 소유한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신체를 책임져야 하기에 유일한 길은 후자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즉 '소유와 존재'가 맞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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